성평등[대회] 말의세계에감금된것들 서평쓰기 대회 최종심사평

관리자
202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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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 서평대회 심사평

 

기록을 펴낼 때면 늘 읽을 사람을 상상합니다. 우리는 억압과 저항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기록이 누군가의 손에 들려 읽히고 그의 삶과 만날 때, 기록이 추구하는 세상은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록을 ‘기록활동’이라 칭하고, 기록을 쓰는 일만큼이나 기록으로 사람과 만나는 일에 힘써왔습니다. 전국여성연대에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의 서평대회를 열겠다는 제안을 주셨을 때, 특별히 반갑고도 감사했던 이유입니다.

‘국가보안법’ 문제에는 강력한 공포정치가 작동합니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이미 낡았거나, 혹은 아주 특수한 누군가의 일로만 여겨지기에 폐지 운동이 오랫동안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의 시급함을 알아봐 주시고 소중한 글을 보내주신 모든 분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평대회’의 형식을 빌다 보니 순위를 매길 수밖에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신중한 논의 끝에 모두 세 편의 작품을 선정했습니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에 담긴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잇고’, 새로운 통찰을 잘 담아냈는가를 수상작 선정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글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이 이야기하는 것들을 두루 생각해보는 일입니다. 페미니스트 인식론은 ‘사유’라고 불리는 이 과정에서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중요한 태도가 있음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는 복잡한 현실을 복잡하게 보는 힘입니다. 억압은 다양한 정체성과 맥락이 얽히는 복잡한 구조를 섬세하게 인식하며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또 하나, 쓰는 사람 또한 세계의 일부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이 문제와 맺어온 관계를 생각해보지 않는다면, 사유의 시간은 결국 내 삶에 대해 어떤 것도 말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심사평을 쓰기 위해 수상작들을 다시 읽으면서 가슴이 찡했습니다. 먼저 우리가 이 책에 담고자 했던 이야기를 잘 이해해주셨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억압적 법체계에 가려 누락되고 탈락된 이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리려는 시도이자, 동시에 소수자의 관점에서 한국 현대사를 통째로 다시-쓰는 과정”(송*진)임을 포착해주셨습니다. 또한 여성 피해자의 구술기록이 “국가보안법과 일상을 배치되는 것으로, 저항과 생활을 배치되는 것으로 보지 않는 데에서도 의미가 있다.”(김*은)는 점도 잘 짚어주셨습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의 서사를 다루었지만, 실제로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은 그들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말의 세계가 무엇인지 깨닫고, 세계에서 쫓겨날지언정 ‘말씀’에 대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는 김*은 님의 말은 구술자들에게 따뜻한 연대와 응원의 말이 되었습니다.

특히 김*효(1등상)님의 글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출발해, 억압이란 단순하지 않음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면서 기록자들이 담아내지 못한 지점까지 사유를 넓혀가는 힘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앞으로 시작될 서울시장보궐선거와 차별금지법에 관한 논의에서 국가보안법이 함께 다뤄지면 좋겠다는 김지효 님의 제안은 새겨들을 만 합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어떤 말을 폭력으로 규정할 것인가?'하는 질문은 '어떤 말을 공론장으로 가져올 것인가?'하는 논의와 맞닿아있”다는 점, “혐오표현조차 '표현의 자유'라는 기치 뒤에 숨어 보호받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생각은 너무나 쉽게 말의 자리에서 탈락하고 처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야말로 국가보안법 문제의 핵심을 관통합니다. 김*효 님이 꼬집은 것처럼 “공동체에 정말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들리지 말아야 할 말이 무엇인지, 폭넓게 논의”하는 경험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 국가보안법의 가장 큰 폐해 중 하나일 것입니다.

기록이란 현재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인식하고 바꿔 갈지를 말하는 이야기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지만, 사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의 억압과 해방은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과 어떻게 만나는가. 불편한 질문과 씨름하고,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의 세계’와 싸우는 이야기들이 서로를 만날 장을 마련해주신 ‘전국여성연대’에게도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을 함께 쓴

강곤, 박희정, 유해정, 이호연, 홍세미 드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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