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여성회 이혜선 상임대표의 평화칼럼]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 개강에 부쳐
◆ 베를린 소녀상 기습 철거 소식, 그 의미
◆ 한일 12.28 위안부 합의의 국제적 맥락
◆ 이재명 정부로 이어진 잘못된 역사인식
◆ 연대와 행동으로 실천하는 평화의 약속

세종시가 주최하고 세종여성회가 주관하는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이 18일 세종여성플라자 혜윰에서 새롭게 개강했다. 사진=박미라 전문기자

18일 열린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이혜선 세종여성회 상임대표 사진=박미라 전문기자
◆ 베를린 소녀상 기습 철거 소식, 그 의미
세종시가 주최하고 세종여성회가 주관하는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이 18일 세종여성플라자 혜윰에서 새롭게 개강했다. 시민이 주도하는 평화·인권 문화 확산을 목표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교육이다.
이번 교육의 이름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하는’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전제는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를 묻는 핵심 질문이자, 수강생들이 교육 내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소녀상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곤 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기림비’ 혹은 ‘평화비’를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상징한다. 동시에 보편적 여성인권, 전쟁 없는 세상, 평화에 대한 염원 등 더 깊고 넓은 의미도 담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하며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국내에는 현재 155개, 해외 10개국에는 35개의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다. 해외 소녀상은 미국 16개, 독일 5개, 일본 4개, 중국·필리핀·호주 각 2개, 홍콩·캐나다·이탈리아·스페인에 각 1개씩 있다. 그런데, 바로 어제(17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이 구청에 의해 오전 7시경 기습 철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공분을 사고 있다.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소녀상은 전쟁 중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과 함께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세워졌고, 미국 LA의 소녀상은 인종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최근에 세워진 이탈리아 스틴티노의 소녀상은 전시 최대 피해자로 내몰리는 여성과 아동의 현실을 환기하며, 전시 성폭력 반대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의 희망을 건넨다. 그리고 어제 기습 철거된 독일 베를린의 소녀상 역시 분단의 아픔과 탈식민주의, 반전·평화, 인종차별 등 오늘의 인류가 마주한 다양한 문제 해결을 기원하는 ‘평화비’였다.
이번 독일 베를린 소녀상 기습 철거에서 보듯,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은 해외 ‘위안부 소녀상’의 건립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이미 설치된 소녀상에 대해서도 철거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의 박물관(ESMA)에 세워질 예정이던 소녀상은 아베 정부의 외교 압력으로 무산됐다. 같은 해 독일 카셀주립대 총학생회 주도로 설치된 소녀상은 일본 총영사의 철거 압박 이후 악성 메일 공격이 이어지자, 결국 2023년 3월 기습 철거됐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스틴티노 시의 소녀상 건립 때도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이 조직적으로 방해에 나섰고, 제막식 이틀 전까지 일본 대사가 시청을 찾아 비문 수정과 건립 취소를 압박했다. 건립 이후 지금도 시청에는 일본 극우세력의 항의 메일과 소포가 수백 통씩 쌓이고 있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철거 규탄 입장문 이미지 출처=정의기억연대 누리집
◆ 한일 12.28 위안부 합의의 국제적 맥락
일본 정부가 이처럼 소녀상 철거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베 신조 내각 이후 강화된 극우 정치 세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세력은 일본의 반인권적 전쟁범죄행위를 역사에서 지우고, 재무장을 통해 다시 동아시아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에게 평화의 소녀상은 '전시성폭력 중단', '반전평화', '인권', '평화 실현'을 대변하는 불편한 존재다.
이 같은 태도는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일명 '12.28 위안부 합의'로 이어졌다. 당시 아베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비공개 이면합의에는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에 대한 한국정부의 설득 노력 ▲제3국 평화비 지원을 포함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노력 ▲‘성노예’ 표현 사용 반대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전국적으로 ‘합의 무효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세종에서도 이 공분을 함께 나누며 세종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단 활동이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의 배경에는 당시 오바마 정권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 정책이 있다. 2011년 10월,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앞으로 미국은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유럽과 중동에 집중되었던 미국의 전략적 초점과 자산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피봇 투 아시아’ 정책은 잠재적 패권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아태 전략 핵심으로, 일본을 전략적 교두보로 활용했다.
2015년 2월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핵심 담당자였던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은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과거사 해결을 요구하는 중국과 한국을 겨냥한 것으로, 과거사 자체를 부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노골적으로 두둔한 것이었다. 그 셔먼 차관이 국무부장관으로 승진해 성사시킨 것이 바로 ‘12.28 일본군 위안부 합의’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자국의 지속적 패권 유지를 위해 일본을 전략적 동맹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일본의 전쟁범죄 사죄와 공식적 배·보상의 부담, 즉 과거사 책임을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대신 수용하도록 압박했다. 이런 맥락에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노동자 제3자대위변제안과 함께 한국 굴종외교의 표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일 양 정상은 부당한 한일합의 철회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에 책임을 다하라!" 2016년 3월 29일 기자회견 사진=한일합의무효와 정의로운해결을 위한 전국행동
◆ 이재명 정부로 이어진 잘못된 역사인식
12.28 위안부 합의는 국회 비준 없이 한일 외교부 장관 기자회견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됐다. 절차적·형식적으로 정상적인 외교 합의라고 보기 어려운 흠결이 많은 문서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실제적 무효화’를 선언하며 합의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도 이 합의에 대해 피해자 중심 접근 부재,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배·보상 미비,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인 ‘진실·정의·배상’에 어긋난 점 등을 지적하며, ‘온전한 문제 해결로 보기 어렵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런데 노골적인 친일사대 행각과 독재 회귀를 꿈꾸던 윤석열 정부 탄핵 이후,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며 들어선 이재명 정부에서도 사문화된 12.28 위안부 합의를 되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직전인 8월 19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정권의 '위안부' 합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국가로서의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8월 23일 도쿄를 방문하여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한일 양국 간 공동합의문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상회담문 어디에도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나 배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언급한 “정책 일관성과 국가의 대외 신뢰"는 "국민과 피해자·유족 입장"과 결코 상반되어서는 안된다. 피해자의 인권 회복이 정부의 일관된 기조여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발전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초석이며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길이다.
이시바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문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모호한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표현에는 김대중-오부치 선언뿐만 아니라, 아베 내각의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동원 없는 자발적 선택이었다. 자국 후손에게 사죄와 반성을 강요하지 말라”는 주장, 그리고 스가 총리가 “종군 위안부의 ‘종군’이 일본군을 연상시킨다”며 삭제한 각의 결정도 포함된다.

2024년 8월 평화의 나비로 씻겨진 세종 평화의 소녀상 사진=김이연심 기자
◆ 연대와 행동으로 실천하는 평화의 약속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단 여섯 명 뿐이다. 동아시아의 전후 세대는 그들의 고통을 책임감 있게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 시기에 자행된 일본군'위안부' 모집이 지역 할당과 강제 차출, 알선 사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의 가부장주의가 공범으로 작동했다는 뼈아픈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강제로 끌려간 소녀는 무고한 희생자였지만, 계약에 따른 직업여성이라면 괜찮다"라는 식의 접근은 일본 극우세력과 한국 역사부정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프레임이다. 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명백한 전쟁범죄이며 반인권적 만행이었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일부 극우 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다니며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거나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말뚝을 박는 등 혐오 행위를 이어오고 있다. 심지어 아사히 맥주를 붓거나 스시를 먹이는 등 조롱성 퍼포먼스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부’로 몰고자 하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에는 피해자의 주소를 공개적으로 현수막에 내걸거나, 자택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반인권적 만행의 강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또한 리박스쿨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 역사부정세력들의 지속적인 역사 왜곡과 혐오 공격은 교묘하고 집요하게 우리 아이들과 우리 세대의 삶 전반에 파고들고 있다.
우리는 계엄령이 선포된 2024년 겨울 한가운데를 연대의 힘으로 헤쳐 나오며 2025년 봄을 맞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 외교, 인권 전반에서 사회 대개혁 과제들이 추진되고 완성되기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광복 80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의 연대는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은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묻는 미래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인권을 짓밟고 전쟁을 미화하는 모든 폭력에 맞서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버팀목이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며, 이번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은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가겠다는 연대이자 약속이다. 여기서 성장한 시민 강사들이 지역 곳곳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인권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써 내려가기를 기대한다.

2025년 8월 14일 제13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기념사진=김이연심 기자
이혜선 세종여성회 상임대표 newspeach@newspeac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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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목소리]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기습 철거에도 꺾이지 않을 연대의 힘
[세종여성회 이혜선 상임대표의 평화칼럼]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 개강에 부쳐
◆ 베를린 소녀상 기습 철거 소식, 그 의미
◆ 한일 12.28 위안부 합의의 국제적 맥락
◆ 이재명 정부로 이어진 잘못된 역사인식
◆ 연대와 행동으로 실천하는 평화의 약속
◆ 베를린 소녀상 기습 철거 소식, 그 의미
세종시가 주최하고 세종여성회가 주관하는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이 18일 세종여성플라자 혜윰에서 새롭게 개강했다. 시민이 주도하는 평화·인권 문화 확산을 목표로,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교육이다.
이번 교육의 이름 앞에는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하는’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전제는 우리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를 묻는 핵심 질문이자, 수강생들이 교육 내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주제가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화의 소녀상이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묻곤 한다. 평화의 소녀상은 ‘기림비’ 혹은 ‘평화비’를 소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상징한다. 동시에 보편적 여성인권, 전쟁 없는 세상, 평화에 대한 염원 등 더 깊고 넓은 의미도 담고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1000차 수요시위를 기념하며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국내에는 현재 155개, 해외 10개국에는 35개의 소녀상이 설치되어 있다. 해외 소녀상은 미국 16개, 독일 5개, 일본 4개, 중국·필리핀·호주 각 2개, 홍콩·캐나다·이탈리아·스페인에 각 1개씩 있다. 그런데, 바로 어제(17일) 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있던 '평화의 소녀상'이 구청에 의해 오전 7시경 기습 철거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공분을 사고 있다.
세계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저마다의 이야기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소녀상은 전쟁 중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과 함께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자는 취지로 세워졌고, 미국 LA의 소녀상은 인종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가장 최근에 세워진 이탈리아 스틴티노의 소녀상은 전시 최대 피해자로 내몰리는 여성과 아동의 현실을 환기하며, 전시 성폭력 반대와 전쟁 없는 평화로운 세상의 희망을 건넨다. 그리고 어제 기습 철거된 독일 베를린의 소녀상 역시 분단의 아픔과 탈식민주의, 반전·평화, 인종차별 등 오늘의 인류가 마주한 다양한 문제 해결을 기원하는 ‘평화비’였다.
이번 독일 베를린 소녀상 기습 철거에서 보듯, 일본 정부와 극우 세력은 해외 ‘위안부 소녀상’의 건립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이미 설치된 소녀상에 대해서도 철거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202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억의 박물관(ESMA)에 세워질 예정이던 소녀상은 아베 정부의 외교 압력으로 무산됐다. 같은 해 독일 카셀주립대 총학생회 주도로 설치된 소녀상은 일본 총영사의 철거 압박 이후 악성 메일 공격이 이어지자, 결국 2023년 3월 기습 철거됐다. 지난해 6월 이탈리아 스틴티노 시의 소녀상 건립 때도 일본 정부와 극우세력이 조직적으로 방해에 나섰고, 제막식 이틀 전까지 일본 대사가 시청을 찾아 비문 수정과 건립 취소를 압박했다. 건립 이후 지금도 시청에는 일본 극우세력의 항의 메일과 소포가 수백 통씩 쌓이고 있다.
◆ 한일 12.28 위안부 합의의 국제적 맥락
일본 정부가 이처럼 소녀상 철거에 집착하는 이유는 아베 신조 내각 이후 강화된 극우 정치 세력과 무관하지 않다. 이들 세력은 일본의 반인권적 전쟁범죄행위를 역사에서 지우고, 재무장을 통해 다시 동아시아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이들에게 평화의 소녀상은 '전시성폭력 중단', '반전평화', '인권', '평화 실현'을 대변하는 불편한 존재다.
이 같은 태도는 2015년 12월 28일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 일명 '12.28 위안부 합의'로 이어졌다. 당시 아베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비공개 이면합의에는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에 대한 한국정부의 설득 노력 ▲제3국 평화비 지원을 포함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 철거 노력 ▲‘성노예’ 표현 사용 반대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적 분노가 일었고, 전국적으로 ‘합의 무효화’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세종에서도 이 공분을 함께 나누며 세종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단 활동이 시작돼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12.28 위안부 합의의 배경에는 당시 오바마 정권의 ‘피봇 투 아시아(Pivot to Asia;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 정책이 있다. 2011년 10월, 당시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앞으로 미국은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고 선언했고, 이후 유럽과 중동에 집중되었던 미국의 전략적 초점과 자산이 동아시아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피봇 투 아시아’ 정책은 잠재적 패권 경쟁자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아태 전략 핵심으로, 일본을 전략적 교두보로 활용했다.
2015년 2월 당시,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핵심 담당자였던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차관은 “(동북아에서) 민족주의 감정이 여전히 이용될 수 있으며, 어느 정치지도자도 과거의 적을 비난함으로써 값싼 박수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런 도발은 진전이 아니라 마비를 초래한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발언은 과거사 해결을 요구하는 중국과 한국을 겨냥한 것으로, 과거사 자체를 부인하는 아베 신조 일본 정부의 입장을 사실상 노골적으로 두둔한 것이었다. 그 셔먼 차관이 국무부장관으로 승진해 성사시킨 것이 바로 ‘12.28 일본군 위안부 합의’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자국의 지속적 패권 유지를 위해 일본을 전략적 동맹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일본의 전쟁범죄 사죄와 공식적 배·보상의 부담, 즉 과거사 책임을 일본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대신 수용하도록 압박했다. 이런 맥락에서 12.28 한일 위안부 합의는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노동자 제3자대위변제안과 함께 한국 굴종외교의 표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 이재명 정부로 이어진 잘못된 역사인식
12.28 위안부 합의는 국회 비준 없이 한일 외교부 장관 기자회견에서 기습적으로 발표됐다. 절차적·형식적으로 정상적인 외교 합의라고 보기 어려운 흠결이 많은 문서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실제적 무효화’를 선언하며 합의를 사실상 사문화했다. 유엔 등 국제사회도 이 합의에 대해 피해자 중심 접근 부재, 피해자에 대한 온전한 배·보상 미비,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인 ‘진실·정의·배상’에 어긋난 점 등을 지적하며, ‘온전한 문제 해결로 보기 어렵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
그런데 노골적인 친일사대 행각과 독재 회귀를 꿈꾸던 윤석열 정부 탄핵 이후,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며 들어선 이재명 정부에서도 사문화된 12.28 위안부 합의를 되살리는 일이 벌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 직전인 8월 19일 일본 요미우리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정권의 '위안부' 합의, 강제동원 문제에 대해 “국가로서의 약속이므로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어 8월 23일 도쿄를 방문하여 일본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한일 양국 간 공동합의문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정상회담문 어디에도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나 배상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령이 언급한 “정책 일관성과 국가의 대외 신뢰"는 "국민과 피해자·유족 입장"과 결코 상반되어서는 안된다. 피해자의 인권 회복이 정부의 일관된 기조여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발전적인 한일 관계를 위한 초석이며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만드는 길이다.
이시바 총리는 한일 정상회담 후 공동언론발표문에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1998)을 포함해 “역사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는 모호한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러나 ‘역대 내각의 입장을 계승한다’는 표현에는 김대중-오부치 선언뿐만 아니라, 아베 내각의 “일본군 ‘위안부’는 강제동원 없는 자발적 선택이었다. 자국 후손에게 사죄와 반성을 강요하지 말라”는 주장, 그리고 스가 총리가 “종군 위안부의 ‘종군’이 일본군을 연상시킨다”며 삭제한 각의 결정도 포함된다.
◆ 연대와 행동으로 실천하는 평화의 약속
현재 한국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위안부' 생존 피해자는 단 여섯 명 뿐이다. 동아시아의 전후 세대는 그들의 고통을 책임감 있게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 시기에 자행된 일본군'위안부' 모집이 지역 할당과 강제 차출, 알선 사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이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의 가부장주의가 공범으로 작동했다는 뼈아픈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강제로 끌려간 소녀는 무고한 희생자였지만, 계약에 따른 직업여성이라면 괜찮다"라는 식의 접근은 일본 극우세력과 한국 역사부정세력들이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프레임이다. 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명백한 전쟁범죄이며 반인권적 만행이었음을 왜곡하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일부 극우 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평화의 소녀상을 찾아다니며 검은 비닐봉지를 씌우거나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말뚝을 박는 등 혐오 행위를 이어오고 있다. 심지어 아사히 맥주를 붓거나 스시를 먹이는 등 조롱성 퍼포먼스도 서슴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부’로 몰고자 하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다. 최근에는 피해자의 주소를 공개적으로 현수막에 내걸거나, 자택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등 반인권적 만행의 강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또한 리박스쿨 사태 등에서 볼 수 있듯, 역사부정세력들의 지속적인 역사 왜곡과 혐오 공격은 교묘하고 집요하게 우리 아이들과 우리 세대의 삶 전반에 파고들고 있다.
우리는 계엄령이 선포된 2024년 겨울 한가운데를 연대의 힘으로 헤쳐 나오며 2025년 봄을 맞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치, 경제, 외교, 인권 전반에서 사회 대개혁 과제들이 추진되고 완성되기를 기대해왔다. 그러나 광복 80년을 맞은 지금,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의 연대는 더욱 굳건해져야 한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은 과거를 기억하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묻는 미래의 나침반이다. 우리는 인권을 짓밟고 전쟁을 미화하는 모든 폭력에 맞서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 버팀목이 바로 평화의 소녀상이며, 이번 평화·인권활동 강사양성교육은 이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가겠다는 연대이자 약속이다. 여기서 성장한 시민 강사들이 지역 곳곳에 평화의 씨앗을 심고, 인권의 언어로 세상을 다시 써 내려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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